3년째 태풍이 한국에 상륙하지 않은 이유 베스트 5|
2026년 23개 발생했는데 왜 한국만 비껴갔나
대한민국 육지에 마지막으로 태풍 상태로 상륙한 태풍은 2023년 8월 10일 경남 거제 부근에 들어온 제6호 태풍 카눈입니다.
카눈은 오전 9시 20분쯤 거제 부근에 상륙한 뒤 한반도를 남북으로 길게 통과하며 전국에 강한 비와 바람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이후 상황은 예상보다 조용했습니다.
2024년에는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이 있었지만 태풍 상태로 육지에 상륙한 사례는 없었고, 2025년에는 북서태평양에서 태풍이 27개나 발생했음에도 기상청 통계상 우리나라 영향 태풍 자체가 0개였습니다.
2026년에도 8월 말까지 태풍은 23개 발생했지만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영향을 준 태풍은 1개뿐이며 육지 상륙은 아직 0개입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올해는 평년보다 빠른 속도로 태풍이 잇따라 만들어졌는데 중국과 일본, 필리핀 주변은 여러 차례 태풍의 영향을 받은 반면 한반도는 계속 직접 경로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태풍이 많이 발생한다고 해서 반드시 한국으로 오는 것은 아닙니다.
태풍의 발생 위치와 주변 고기압의 세력, 상층의 바람,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의 위치가 조금만 달라져도 진로는 수백에서 수천 킬로미터까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2023년 카눈 이후 왜 한국에는 태풍 상륙이 이어지지 않았을까요.
최근 3년의 기상 흐름을 기준으로 다섯 가지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5위. 원래 태풍의 한국 육지 상륙 자체가 자주 일어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기상청이 사용하는 1991년부터 2020년까지의 평년값을 보면 북서태평양에서는 한 해 평균 25.1개의 태풍이 발생합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태풍은 평균 3.4개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향 태풍’과 ‘상륙 태풍’이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기상청의 영향 태풍 통계에는 태풍 중심이 한반도 육지를 직접 통과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해상이나 육상에 태풍특보가 내려지거나 기상학적으로 영향을 준 사례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즉 평균 3.4개라는 숫자를 그대로 ‘매년 3~4개의 태풍이 한국 땅에 상륙한다’고 해석하면 실제보다 훨씬 많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태풍의 주요 영향권에 있는 것은 맞지만 북서태평양 전체에서 보면 한반도는 태풍 이동 가능 경로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필리핀과 대만을 지나 중국 남부나 베트남으로 가는 경로도 많고, 일본 열도 쪽으로 휘어지는 태풍도 있으며, 아예 북서태평양 먼바다에서 소멸하거나 온대저기압으로 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몇 년 연속 태풍 상태의 육지 상륙이 없다고 해서 그 자체만으로 매우 이례적인 이상 현상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태풍은 해마다 발생 위치와 기압 배치가 크게 달라지는 만큼 상륙 횟수의 연도별 변동성이 상당히 큰 자연현상에 가깝습니다.


4위. 한반도 가까이 와도 상륙 전에 태풍 자격을 잃을 수 있습니다
2024년 제9호 태풍 종다리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종다리는 8월 19일 일본 오키나와 남서쪽 해상에서 발생한 뒤 북상해 제주도와 서해에 비바람을 몰고 왔습니다.
그러나 8월 20일 밤 흑산도 남남동쪽 약 30킬로미터 해상에서 열대저압부로 약화됐습니다.
이후에도 저기압 형태로 계속 북상해 다음 날 오전 강화군 부근에 상륙했지만 그 시점에는 이미 태풍이 아니었습니다.
이 차이는 일반적으로 체감하는 ‘태풍이 왔다’와 기상 기록상의 ‘태풍이 상륙했다’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태풍이 열대저압부로 약해진 뒤에도 많은 수증기와 강한 바람을 동반할 수 있기 때문에 비와 돌풍, 침수 피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심 최대풍속 등 태풍 기준을 유지하지 못하면 공식적으로는 태풍 상륙 기록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특히 한반도 주변까지 북상한 태풍은 상대적으로 차가운 바다와 육지 마찰, 건조한 공기 유입, 상층 바람의 변화 등 여러 요인에 의해 빠르게 약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근처에 태풍이 왔는가’와 ‘태풍 상태로 한국 육지에 상륙했는가’는 반드시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3위. 최근 태풍의 발생 위치와 초기 진로가 한국행 코스와 잘 맞지 않았습니다
태풍의 최종 진로는 주변 기압계가 결정하지만 시작점도 매우 중요합니다.
같은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하더라도 필리핀에 가까운 저위도에서 만들어진 태풍과 일본 남동쪽 먼 해상에서 만들어진 태풍은 처음부터 선택할 수 있는 이동 경로가 크게 다릅니다.
2025년 여름철인 6월부터 8월 사이에는 모두 14개의 태풍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중국과 베트남 방향으로 서진하거나 대만과 일본 주변으로 이동했고, 한국을 향해 남쪽에서 곧게 북상하는 전형적인 경로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연간으로는 27개의 태풍이 발생했지만 기상청 통계에서 우리나라 영향 태풍은 한 개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2026년에는 태풍 발생 자체가 매우 활발했습니다.
기상청 통계상 8월까지 23개의 태풍이 발생해 같은 기간 평년 발생 수보다 많은 수준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중국 방향으로 이동한 태풍과 일본 열도 또는 일본 동쪽 먼바다로 빠진 태풍이 많았고, 한국으로 직진하는 경로는 좀처럼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태풍이 많이 생겼다는 사실과 우리나라 위험도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반도에 영향을 주려면 발생 위치와 이동 시점, 주변 기압계가 동시에 한국행 경로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최근 몇 년은 이 조합이 계속 어긋났던 셈입니다.


2위.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의 강한 영향이 한국 주변의 태풍 길을 바꿨습니다
최근 한반도의 기록적인 더위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것이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입니다.
2024년에는 장마가 끝난 뒤 두 고기압의 영향이 겹치며 늦더위가 길게 이어졌고, 2025년에도 북태평양고기압이 평년보다 일찍 확장한 데다 여름 후반에는 티베트고기압의 영향까지 더해지며 강한 폭염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고기압은 단순히 더운 날씨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태풍이 이동할 수 있는 대기의 큰 흐름에도 영향을 줍니다.
태풍은 거대한 고기압의 중심을 마음대로 뚫고 지나가기보다 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흐르는 바람을 타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북태평양고기압이 서쪽이나 북쪽으로 강하게 확장하면 태풍이 지나갈 수 있는 통로도 함께 이동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태풍이 중국 쪽으로 밀리고, 반대로 고기압의 동쪽 가장자리를 타면 일본이나 북태평양 쪽으로 크게 휘어질 수 있습니다.
다만 ‘고기압이 강해서 태풍을 막았다’고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고기압의 세기만큼 중요한 것이 고기압의 중심과 가장자리가 어디에 위치했느냐이기 때문입니다.
강한 고기압이 있어도 가장자리가 한반도를 향하는 형태로 놓이면 오히려 태풍이 그 길을 따라 한국 쪽으로 북상할 수 있습니다.
결국 최근의 강한 고기압은 태풍을 완전히 차단하는 방패라기보다 한국 주변의 지향류와 통로를 바꾼 중요한 배경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1위. 가장 결정적인 것은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가 한국행 통로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태풍 진로를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지향류입니다.
지향류는 태풍 주변의 넓은 범위에서 불고 있는 바람으로, 거대한 소용돌이인 태풍을 전체적으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자동차가 도로를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태풍도 주변 대기의 큰 흐름을 따라 이동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 여름과 초가을 태풍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의 위치입니다.
북태평양고기압이 한반도 남동쪽에서 적당한 형태로 자리 잡고 가장자리를 따라 남풍이나 남동풍 계열의 지향류가 형성되면 태풍은 동중국해나 일본 남쪽 해상에서 한반도를 향해 북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23년 카눈도 한반도 동쪽에서 발달한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의 지향류를 타고 북상해 거제 부근에 상륙했습니다.
반대로 고기압의 위치가 조금만 서쪽으로 치우치면 태풍은 중국 쪽으로 향할 가능성이 커지고, 동쪽으로 물러나면 일본 동쪽이나 북태평양으로 방향을 틀 수 있습니다.
이 차이는 지도에서는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실제 태풍 경로에서는 수백 킬로미터 이상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2024년부터 2026년 8월까지는 태풍이 발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한국으로 이어지는 이 통로가 반복해서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핵심에 가깝습니다.
태풍은 계속 만들어졌지만 그때마다 발생 지점과 북태평양고기압의 위치, 지향류가 한국보다는 중국이나 일본, 먼바다 쪽으로 길을 내준 것입니다.


태풍이 3년째 상륙하지 않았다고 앞으로도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최근 몇 년의 기록을 앞으로의 안전 신호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태풍은 장기 평균보다 특정 해의 기압 배치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2026년 8월까지 한국에 상륙한 태풍이 없었다고 해서 9월과 10월까지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평년 통계에서도 9월은 북서태평양에서 태풍이 평균 5.1개 발생하는 활동이 매우 활발한 달이며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태풍도 적지 않습니다.
또한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가 높은 상태에서는 한국 쪽으로 진로가 잡힌 태풍이 북상 과정에서 충분한 에너지를 유지할 가능성도 주의해야 합니다.
최근에는 태풍의 직접 상륙 여부와 별개로 멀리 떨어진 태풍이 북태평양고기압과 장마전선의 위치를 바꾸면서 폭염이나 집중호우에 간접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지난 3년 동안 태풍이 한국을 비껴간 가장 큰 이유는 ‘태풍이 약해졌기 때문’도, ‘한국 주변 바다가 차가워졌기 때문’도 아닙니다.
태풍이 만들어진 위치와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 지향류가 한국행 통로를 반복해서 만들지 않았던 결과에 가깝습니다.
지금까지 운 좋게 상륙 경로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태풍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기압 배치가 단 한 번만 달라져도 다음 태풍의 길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가을 태풍 시즌까지는 최신 기상청 예보와 태풍 정보를 계속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